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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탐구가. 독서

장수 고양이의 비밀

by 로 건 202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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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0시 반에 회사 문을 나선다. 
입구 쪽 경비 아저씨가 앉아있는 곳만 모니터의 푸르스름한 불빛이 있을뿐 낮동안 사람들로 가득찼던 빌딩은 어둡고 스산하기만 하다.

나는 평소에 목례만 하던 경비아저씨를 바라보고,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나왔다.
'아 저 분은 여기서 밤을 지새우나 보구나. 외롭지 않을까. 쓸쓸하겠다.' 라는 생각이 스친다.

나이 지긋하신 분이고 삶의 연륜으로 내 걱정이 무의미한 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을까. 문득 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이가 들수록 고독에 초연해진다. 이십대만 해도 혼자하는 것이 두렵고, 심지어 부끄럽게까지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사람들은 내가 혼자서 무얼하던 별로 관심 없다는 걸 알게된다.

또, 혼자서 여행을 해보며 그 시간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봤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까지도.

온전히 내게 집중하면서, 사색하고, 먹고, 보고 하는 시간은 참 소중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기쁨도 분명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면, 늘 타인과 함께하는 것만 찾게 된다.

그래서 7월 중순에 교토행 비행기를 끊었다. 그냥 온전히 혼자 쉬고싶다. 가끔은 외로울 걸 안다. 하루에 한마디도 안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고독에 머무르고 싶고, 온전히 내가 되어보고 싶다. 이 여행에서 함께할 책 4권을 선정할 생각에 벌써 설렌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혼자가 된다.
나를 알아야 남을 아니까.

 

 

인상 깊은 내용 발췌


그때도 나는 특별히 화를 내지 않았다. 몹시 실망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화내거나 비난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새 주화로 만든 열쇠고리를 받아들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일도 생기는 법이다'라고 그때 문득 생각했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랬더라면 또 그런대로 지금처럼 마이페이스로 무난히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이 '눈길 운전을 잘하려면 눈길을 많이 달려서 위험한 상황에 고루 닥쳐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작은 일 하나하나를 견실하게 해나가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쓰는 일, 제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차피 비정한 세계다. 모두에게 웃어주기는 불가능하고, 본의 아니게 피가 흐르기도 한다. 그 책임은 내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아니면 서른 살, 마흔 살이라는 고비는 무슨 일이 있든 없든 정신적으로 벅찬 법인지도 모른다. 나이든다는 것, 늙는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니까.

결과로서의 형태는 분명 중요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것은 좀더 다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영원히 이기기만 하는 인간은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

언제까지고 마음을 울리는 한 권의 책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렇듯 귀중한 인생의 반려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긴 세월이 흐른 뒤 사람의 마음가짐에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더 큰 충격은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무의식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잔혹하고 냉엄한 사실이었다. 나는 지금도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 사실에 깊은 두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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